Menu
제목 | [노동뉴스] 코로나에 인력난… 최저임금도 올라… 中企 “주52시간 강행 땐 문닫아야” |
---|---|
작성자 | 로고스 |
작성일 | 21-06-28 08:29 |
7월부터 50인미만 사업장 시행 준비 못한 영세업체들 ‘직격탄’
“주 52시간 준비됐다” 319곳 중 3.8%뿐 특근수당 사라져… “월급 10년 전으로”
수주 때마다 업무 몰리는 조선·건설업 유연근무 강점인 스타트업 등도 ‘비상’
임금감소로 ‘투잡’ 내몰리면 취지 퇴색 처벌 중심 운영 대신 실질적 해법 필요 “업종별 특성 감안 탄력적용” 목소리도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여서 차라리 범법자가 되려고요. 주 52시간 따지면 일할 사람이 부족하고, 지금 기계를 안 돌리면 대출이자랑 어음 만기를 해결하지 못해서 폐업해야 할 판입니다.”
경기 안산시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50대 A씨는 지난해부터 8개월가량 공장 가동을 멈췄다가 올해 초부터 겨우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구두계약 단계이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의 2차 협력사로부터 생산 일부를 나눠 받기로 하고, 본격적인 일감이 들어오는 가을부터 공장 설비를 늘릴 계획도 세워둔 상태였다. A씨는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장을 닫아서 정부지원금이라도 받았는데, 올해는 원래 내려오던 혜택도 줄어서 더 힘들다”며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막혔고, 젊은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서 지금의 2.5교대 체제를 3교대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컴퓨터학원 대표를 맡고 있는 B씨도 올 여름방학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에는 직원들과 일정을 상의해 추가로 강의를 배분했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시행에 따라 신규 채용이 불가피해지면서다.
B씨는 “아직 수강생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인력을 늘리기에는 인건비가 엄청난 부담이 된다”면서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 최저임금도 계속 오르고 있는데, 여기에 주 52시간제까지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다음달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주 52시간제 시행을 강행하기로 하면서 제도 시행 대상이 된 업체들 상당수가 패닉에 빠졌다. 27일 산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세 장기화에 최저임금과 원자재값 상승 등이 맞물린 상황으로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등 삼중고에 허덕이는 영세업체
경영자총연합회가 주 52시간제 확대 시행을 앞둔 50인 미만 기업 31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월까지 주 52시간제 준비를 완료할 수 있다고 대답한 곳은 3.8%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뿌리산업과 조선업종 207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44.0%가 주 52시간제를 시행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답했다.
주 52시간제를 준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인력난(42.9%)이었다. 국내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취업 기피 현상이 심해지며 날로 인력 채용이 힘들어지는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까지 차단되면서 일손 부족을 호소하는 현장이 늘어났다. 제조업 기준 지난해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도입 계획은 3만7700명이었는데, 실제 입국 인원은 6.4%(2437명)에 불과했다. 올해는 그보다 줄어서 지난달 말까지 도입 계획(4만700명)의 2.5% 수준인 1021명만 입국했다.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최저임금도 부담이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영세업체일수록 주 52시간제 준수를 위해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상승률은 문재인정부 첫해인 2018 년과 이듬해는 각각 16.4%, 10.91%였다가 지난해에는 2.87%로 완만해졌다. 올해 최저임금 시간당 8720원으로, 전년 대비 1.5%의 인상률을 보였지만 노동계는 내년 인상률을 23.9%로 끌어올려 시간당 1만800원의 최저임금 요구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의 가파른 상승도 중소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12.41로 전월(109.56)보다 2.6%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3.8% 급등한 수치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대내외 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 주 52시간제 시행은 ‘우는 아이 뺨 때리는 격’이나 마찬가지로, 열심히 먹고살려는 영세업체의 의지까지 빼앗아가는 처사”라며 “최소한 코로나19가 안정세로 돌아설 때까지는 제도 시행을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뿌리산업·스타트업 등 고사 위기
중소기업 중에서도 유독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들이 있다. 금형·표면처리·용접 등의 일을 하는 뿌리산업 종사 기업과 조선·건설업 분야가 대표적이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제조업을 하는 C씨는 “주물 생산라인은 24시간 돌아가야 하는데, 주 52시간제를 위해선 주기적으로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회사 차원에서는 생산량이 줄어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직원들도 특근수당 등을 받지 못해 월급이 약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게 돼서 웃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와 인력난으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27일 인천 남동공단에 인력사무소 전단지가 붙어있다. 이재문 기자 조선·건설업 분야는 발주가 있을 때만 집중적으로 일을 하게 되는 특성 탓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업무를 발주한 회사나 원청업체 등이 요구하면 이를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인 데다가 날씨 등 계절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충청권에서 전문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D씨는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는 7월에는 장마철이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업무를 몰아서 할 수밖에 없다”며 “공기를 준수하는 것은 기본적인 신뢰의 문제라서 주 52시간제를 운영하다 보면, 점점 입찰에서도 밀려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창업과 스타트업 활동도 크게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벤처기업협회·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16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지난 22일 성명을 내고 “획일적 잣대에 의한 주 52시간제 도입은 혁신 벤처기업의 핵심 경쟁력 저하를 가져오고, 자율적 열정과 유연성이 무기인 혁신 벤처기업의 문화를 훼손할 수 있다”며 다음달 1일부터로 예정된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사업장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1년 유예기간을 요청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90% 이상이 50인 소규모 사업장이다. 벤처기업협회 등 16개 단체협의회는 최근 배포한 입장자료를 통해 “주 52시간제를 지키다 보면 단기간 집중적으로 일을 해서 성과를 내는 혁신벤처의 성공방정식도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이상과 현실 타협점 찾기 불가피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과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기 위한 정부의 세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근로자의 안전과 일·가정 양립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현장에서는 임금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투잡을 하게 되면 오히려 복합적인 과중노동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처벌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지 말고, 왜 제도가 정착되지 못하는지 원인분석을 거쳐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근로자 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보다는 업종별 특성과 현실을 이해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과)는 “지금은 코로나19 재난 상태로 예측불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어떤 문제가 추가로 생겨날 것인지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평균적인 근로시간은 단축시겨 주되 업종별로 탄력근로제를 확대해 일을 조절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출처 : 세계일보] |
|